단재 신채호선생 생가지(대전기념물 제26호)
2007년 7월 23일 대전 중구 어남동 233번지에 소재한 단재 신채호선선생 생가지를 방문했다.
우리시에 단재의 생가지가 있다는것에 감짝놀랐다.
우리집(복수동)에서는 멀지 않는 곳에 소재하고 동물원을 지나 舊산서동사무소를 10분 가면 이정표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다리를 지나 5분정도 올라가면 된다.
대전시내권 이면서도 농촌풍경을 느낄수 있고 여름에는 많은 피서객들이 개울을 찾는 곳이기도 하다.
도착해보니 관리자의 기와집에 보이고 대전시에서 잘 복원해놓았다.
이곳은 단재 선생이 태어나서 8살까지 거주한 곳이고 이후 충북 천원으로 이사하였다고 한다.
특히 지형 산세를 보니 생가지 맞은편에 팬을 닮은 도리산에 바주보고 있다. 단재 선생이 도리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서 위대한 동립운동가가 된것 같다.
1991년 7월 10일에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1992년 여름 생가 터에 대한 발굴조사와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여 신채호의 생가가 복원되었다고 한다.
단재 신채효 선생은.....
신채호(申采浩:1880∼1936)는 사학자·언론인이며 항일독립운동가로, 1880년 12월 8일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인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리미 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이곳에서 아버지가 죽은 8살 때까지 살았다.
그후 할아버지가 사는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 마을로 옮겨갔다. 그는 그곳에서 10년 동안 할아버지가 차린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를 한 후 19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4월에 망명길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8년 대만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뤼순[旅順]감옥의 독방에 수감되어 복역하던 중 1936년 2월 21일 57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도리산(생가지 맞은편)
신채효 선생 동상
대전시 기념물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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